삼국유사는 몽골에 저항하기 위해 찬술되었는가?
“흉포한 몽고를 상대로 한 30년 민족의 대항전 속에서, 이민족의 압제라는 현실의 제약 하에서”(<<한국의 역사인식>>(상)(1976, 창작과 비평사, 135쪽)
“외세의 압력을 극복하고자 하는 정신사관을 강하게 반영하는 사서”(<<한국의 역사가와 역사학>>(상), 1994, 창작과 비평사. 83쪽)
위 두 책은 현재 역사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거의 소장하고 있을 정도로 널리 읽힌 책이다. 이 책에선 일연이 편찬한 <<삼국유사>>의 역사인식을 몽골에 저항하기 위한 민족정신의 고취였다고 말하고 있다. 지금도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이러한 입장에 있다.
그러나 정작 삼국유사에는 몽골[원]에 대한 저항을 나타내는 구절은 찾아지지 않는다. 황룡사 9층탑이 불탄 것에 대해서도 몽골이란 국호를 드러내지 않고 ‘서산병화西山兵火’라고 완곡하게 서술하고 있다. 몽골에 대해서도 ‘지원’이란 연호를 사용하고 ‘대조大朝’라 표기하고 있다.
삼국유사가 원이라는 외세의 압력을 극복하기 위한 정신사관(精神史觀)에 의해 편찬되었다고 하는 견해에 대해서도 전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야를 좀 더 넓혀 보아야 한다. 원에 의한 송의 멸망이라는 국제적인 정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송의 멸망은 세계의 중심이 가변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고려에게 각인시켜 주었다. 지금까지 중국의 역사에 기대어 우리 역사의 왜소함을 달래었다면, 송의 멸망은 이제는 우리의 역사를 우리가 만들어가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 역사의 기원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하였다. 따라서 삼국유사의 편찬목적이 원의 침략과 압력을 극복하려고 했다기보다 송의 멸망에 따른 국제적인 변화 속에서 고려의 자기 찾기 측면이라는 점이 더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조경철, <근대 이전 한국사 속에서의 단군인식>)
[출처 : 나라이름역사연구소 소장 조경철 교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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