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사의 비밀?
서로 가까워지는 비결은 간단하다. 둘만의 비밀을 만드는 것이다.
<<삼국유사>>는 신라 법흥왕이 대통 원년(527) 양나라 황제 무제를 위해서 웅진[공주]에 절을 지었다고 하였다. 일단 이 기록은 527년 당시 웅진이 백제의 수도였으므로 성립되기 어려운 말이다.
그래서 학계에서는 법흥왕을 백제의 성왕으로 바꾸어 이해하고 있다. 물론 백제 성왕이 527년 양나라 무제를 위해서 웅진에 절을 지었다는 것은 그대로 따르고 있다.
이후 대통사는 백제가 정신적으로 중국 양나라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찰로 각인되어 왔다. 마치 서울 한복판에 미국 힐러리를 위한 교회를 세워 주었다면 후대의 역사가가 21세기 한국사를 연구할 때 한국과 미국의 관계를 규정하는 것처럼.
대통은 양나라 무제가 527년 3월부터 사용한 연호이다. 따라서 ‘대통’이란 단어가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양무제’와 ‘527’년이다. 그런데 과연 ‘대통’이 들어갔다고 해서 그것이 항상 연호이고 527년일까?
무령왕릉 지석 위에는 저승 갈 노자돈으로 사용하기 위한 오수전이란 화폐가 놓여져 있다. 양나라에서 보내 준 동전이다. 양나라 때 많은 철전을 주조하였는데 그 때 주조한 여러 철전들을 그림과 함께 기록해둔 <<삼재도회>>란 책이 있다.
이 책에는 여러 이름의 오수전이 수록되어 있다. 대길오수(大吉五銖), 대통오수(大通五銖), 대부오수(大富五銖)등이 그것이다. 대길이나 대통, 대부 모두 돈 이름에는 적격이다. 특히 대통은 세상 모든 것을 통하게 한다는 의미에서 ‘대통오수’란 이름은 참 잘 지었다.
이 오수전들은 언제 만들어졌을까? 대통오수전의 경우 대통연호가 쓰여 있으므로 당연히 대통 원년(527)부터 대통 3년(529)사이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삼재도회>>는 대통오수전이 보통 4년에 주조되었다고 하였다. 보통 4년은 523년이다. 대통원년 527년이 아니다. 따라서 대통사가 양나라 무제를 위해서 지은 사찰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대통사에 대통이란 말이 들어갔다고 해서 대통사란 절의 연대를 527년으로 못 박고 그 절의 창건목적을 양나라 무제와 연관시킨 <<삼국유사>>의 기록은 다시 검토해 보아야 한다. 그 긴 여정이 바로 나의 박사학위논문이었다.
명나라 왕기가 편찬한 <<삼재도회>>의 일부[대통오수, 보통 4년], 대통사(2016, 2010, 2005)
[출처 : 나라이름역사연구소 소장 조경철 교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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