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승려 관륵, 일본불교의 계율을 정비하다!
일부 일본 학자들은 <<일본서기>>에 근거해 백제의 불교 수용연대를 4세기 침류왕 때로 보지 않고 6세기로 늦춰보고 있다. <<삼국사기>>에 엄연히 384년 침류왕 원년 동진의 마라난타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였다고 써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위 <<삼국사기>> 불신론과 맞물려 이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이 근거로 드는 기록은 <<일본서기>> 624년의 기록이다. 한 승려가 할아버지를 구타한 사건이 발생했는데 일본 천황이 이를 계기로 대대적인 승려 통제에 들어갔다. 이때 백제 출신의 승려 관륵은 아직 일본에 계율이 정립되지 않아 생긴 일이라고 변명하고 일본의 승관제도를 확립시킬 것을 제안하는 글을 천황에게 올렸다. 그 글 가운데 다음 구절이 백제 불교 수용에 관한 논란을 야기 시켰다.
“대저 佛法은 西國으로부터 漢에 이르러 300년을 지나 이를 百濟國에 전했는데 그리고 겨우 100년이다. 그런데 우리 임금이 日本天皇의 현철함을 듣고 불상 및 경전[內典]을 貢上했는데 아직 100년이 차지 않았다.”(이기백 번역)
夫佛法 自西國至于漢 經三百年 乃傳之於百濟國 而僅一百年矣 然我王聞日本天皇之賢哲 而貢上佛像及內典 未滿百歲
백제가 일본에 불교를 전해준 연대는 552년이므로 관륵이 글을 올린 624년을 기준으로 아직 100년이 차지 않았다고 한 것은 맞는 말이다. 그런데 중국에서 ‘백제에 불교를 전한지가 겨우 100’년이라고 했으므로 백제에 불교가 들어온 해가 524년 전후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일부 일본 학자는 백제 무령왕이나 성왕 때인 6세기 전반 백제에 불교가 들어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 학계에서는 백제 불교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백제 승려 관륵의 말이라 부정도 하지 못하고 어떤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막연히 추정만 해왔다.
난 위 관륵의 기사를 다음과 같은 관점에서 재해석하였다. 관륵이 말하고 싶은 것은 불교의 수용에 관한 것이라 불교의 계율에 관한 것이었다. 따라서 위 관륵의 말은 백제 계율의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백제는 526년 인도에서 귀국한 겸익을 중심으로 계율을 정비한 적이 있다. 따라서 ‘백제에 불교를 전한지가 겨우 100년’이 아니고. ‘백제에 계율이 전한지가 겨우 100년’인 데로 풀어야 한다. 반면 일본은 이제 불교가 들어 온 지 100년도 되지 않았으므로 하루 빨리 백제처럼 계율을 정비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을 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624년 관륵의 말을 기점으로 백제는 겨우 100년이 되었다고 한 것은 불교 수용이 아니고 율의 정비를 말한 것이므로 백제에 불교가 수용한 연대는 <<삼국사기>>에서 말한 384년임에 변함이 없다.
[출처 : 나라이름역사연구소 소장 조경철 교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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