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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사의 비밀(2), 요지경 속 대통사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실도 한발자국 더 들여다보면 말도 안 되는 것들이 한 둘이 아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대통 원년(527) 신라 법흥왕이 웅진에 양나라 무제를 위해서 대통사를 창건했다고 나와 있다.

법흥왕이 이차돈과 함께 신라에 불교를 받아들이는데 큰 공을 세운 것을 칭찬한 것 까지는 좋은데 웅진에 대통사까지 창건했다고 덧붙인 것이다. 그런데 웅진은 당시 백제의 도읍이었기 때문에 법흥왕이 이곳에 절을 세울 수는 없는 것이다.

일연도 자기가 써놓고 이상했던지 자기의 개인적인 생각을 덧붙였다. 그런데 전혀 핀트를 맞추지 못하고 있다. 일연은 말하기를 당시 웅진은 신라 땅이 맞지만 527년은 이차돈이 순교하는 등 복잡한 시기라 같은 해인 527년 웅진에 대통사를 세울 겨를이 없었을 것이라고 하면서 대통사의 창건연대는 중대통 원년(529)일거라고 하였다.

아니 일연은 법흥왕 때 웅진이 백제의 영토라는 것도 몰랐단 말인가? 당시 웅진이 어느 나라에 속하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웅진에 있는 대통사가 언제 누구를 위해 세워졌는지 어쩌면 그렇게 정확히 알고 있을까?

중국에서 대통으로 연호를 바꾼 때는 527년 3월이라 이 소식을 듣고 527년에 대통사를 세우는 건 불가능하다. 또한 중대통 원년으로 연호를 바꾼 때가 529년 10월이므로 이 소식을 듣고 529년에 대통사를 세우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일연이 말한 527년 529년 모두 논리적으로 맞지 않고 또한 웅진이 신라에 속했다는 것도 말도 안되는데 유독 ‘중국 황제 양무제를 위해서 절을 창건했다’는 것은 왜 그렇게 철썩같이 믿어주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출처 : 나라이름역사연구소장 조경철 교수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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