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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사랑의 도시 부여(3)
아버지를 위한 딸의 기도, 창왕이름이 새겨진 사리감

백제 금동대향로가 발굴된 능사에서 2년 뒤인 1995년 국보급 유물이 또 발굴되었다. 능사의 목탑지에서 발굴된 창왕명사리감이 바로 그것이다. 창왕은 앞서 언급한 성왕의 아들이고 위덕왕이라고도 한다. 사리감은 부처님의 사리를 보관한 감실 모양의 사리함이 감실 모양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사리감은 현재 국립부여박물관에 전시중이다.

신라와 달리 백제는 왕실 여성의 이름이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왕비는 팔수부인 등 손꼽을 정도다. 공주의 경우는 한명도 없다. 그런데 바로 이 창왕명사리감에 백제 공주의 이름이 등장하고 있다. 바로 매형공주다. 사리감에 쓰여 진 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백제 창왕 13년 정해년(567) 매형공주가 사리를 공양하였다.”
“百濟昌王季太歲在丁亥妹兄公主供養舍利”



사리감에 등장하는 매형공주의 매형은 엄밀하게 말하면 공주의 이름은 아니다. 매는 누이이므로, 매형은 창왕의 누이 가운데 맏누이를 뜻하는 말인 것 같다. 나는 편의상 이름처럼 매형공주로 부르고 있다. 삼국사기에는 정해년이 창왕 14년으로 나와 있어 1년의 차이가 나는데 그 이유는 다음 기회에 설명하고자 한다.

매형공주는 창왕의 누이이기도 하지만 성왕의 딸이기도 하다. 성왕의 관산성에서의 전사는 창뿐만 아니라 매형공주를 비롯한 여러 공주들에게도 커다란 충격이었을 것이다. 오빠[또는 동생]인 창이 성왕의 명복을 빌러 절에 들어간다고 말할 정도니 공주 또한 그런 심정이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슬픔을 함께 나누며 그들의 우애는 더욱 남달랐을 것이다.

창왕은 아버지의 명복을 빌기 위해 금동대향로를 만들고 3년상을 치렀던 빈전을 확장하여 아버지의 명복을 비는 절을 창건하였다. 현재 절 이름을 알지 못하여 편의상 능 옆에 있어서 능사라고 부르고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554년 이후 10여년이 지난 567년 능사가 완성되었고 그 절의 목탑에 사리감을 봉안하였다. 아버지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 인지 모르지만 사리감의 모양도 능의 모양을 본땄다.아쉽게 발굴 당시부터 사리감 안에 모셔졌던 사리를 보관한 작은 사리함과 사리가 들어있는 사리병은 없었다.

사리감에 창왕도 등장하고 물론 후원도 많이 했겠지만 매형공주가 사리를 공양하였다고 쓰여 있는 걸 보면 능사와 목탑의 건립에 매형공주가 얼마나 많은 애를 썼는지 알 수 있다.

국립부여박물관의 한 전시실에 아버지를 위해 아들이 만든 금동대향로와 딸이 공양한 창왕명사리감이 나란히 전시되어 있다. 아버지를 그리는 아들과 딸의 애뜻한 마음이 가득 찬 전시실이다.

출처 : 나라이름연구소장 조경철 교수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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