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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사랑의 도시 부여(4)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며, 정지원 이름이 새겨진 불상

부소산성에는 여러 사연 있는 곳들이 많다. 부소산성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낙화암에 오르면 백마강 너머 아버지 창왕이 죽은 아들을 위해 세운 절터가 보인다.

낙화암처럼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부소산성에 달을 보낸다는 뜻의 송월대(送月臺)란 건물이 있다. 지금은 사비루로 이름이 바뀌었다. 1919년 이곳에서 높이 8.5cm의 한 작은 불상이 출토되었다.

이 불상은 하나의 광배에 부처와 양쪽에 두 보살이 협시하는 1광 3존불의 형태를 띠고 있다. 아쉽게 왼쪽 보살의 상당 부분은 떨어져 나갔다.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에는 다음과 같은 글씨가 새겨져 있다.

“정지원이 죽은 처 조사를 위해서 금상[불상]을 만드노니, 어서 삼도를 떠나게 해 주소서”(鄭智遠 爲亡妻 趙思 敬造金像 早離三塗)



남편 정지원은 죽은 아내 조사를 위해서 불상을 만들고 아내가 지옥, 아귀, 축생의 3도를 어서 떠나 윤회의 고통을 벗어나기를 기도하고 있다. 그런데 왜 수라, 인, 천의 3선도를 포함한 6도를 벗어나기를 바라지 않고 3악도를 벗어나기를 바랐을까?

아마도 3도라도 어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일 수도 있다. 아니면 작은 불상을 항상 가지고 다니며 나중에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여 다시 만나기를 간절히 바랐을지도 모른다.

남편과 아내의 성이 정씨와 조씨로 전통적인 백제의 성씨가 아니다. 백제인이 중국 성을 갖다 썼을 수도 있고 아니면 백제로 귀화한 중국인 일 수도 있다. 후자라면 아내와 함께 둘의 꿈을 이루기 위해 백제로 와서 살다가 이국 땅에서 죽었으니 아내에 대한 그리움이 더 컸을 수도 있다.

세상의 인연 가운데 가장 큰 인연이 남녀가 만나 사랑하고 아내가 되고 남편이 되는 인연이다. 그 인연의 끈은 죽어서도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지기를 바랐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묻히기 쉬운 횡혈식 무덤을 고안해 내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다.



전고려의 고분벽화 중에는 마치 연꽃에서 남녀 두 사람이 얼굴을 내밀고 있는 듯한 그림이 있다. 합장으로도 모자라 연꽃에서 환생하여 다시 부부의 인연 맺기를 그림으로 증명했으니~. 오늘 아내가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밤이다.

출처 : 나라이름연구소장 조경철 교수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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