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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사랑의 도시 부여(5)
손자가 할아버지에게 드리는 선물, 자기사 목간

역사는 기록을 통해서 알 수 있다. 한국 고대의 역사를 알기위해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필수적이다. 그러나 위 두 책은 12세기와 13세기에 찬술되어 기원 전후부터 7세기에 걸치는 삼국 당대의 역사를 얼마만큼 잘 전하고 있는지는 항상 의문으로 남아있다. 이런 의문이 남는 후대의 기록을 보완해 주는 것이 당대인들이 남긴 문자자료이다. 대표적인 것인 돌에 새긴 금석문이지만 실용적인 필요성에서 더 많이 사용했던 것이 나무에 글을 남긴 목간이다.

근래 성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 세운 능사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많은 목간들이 발견되었다. 이들 목간들은 주로 성왕과 창왕[위덕왕] 때 만들어진 것들이다. 목간에는 “숙세결업 동생일처 宿世結業 同生一處, 곧 오랜 세월 인연의 업을 맺어 같이 같은 곳에 태어났다”라고 적은 것도 있고, “사월칠일 보희사 송염일석, 四月七日 寶憙寺 送塩一石, 4월 7일 보희사에서 소금 1석을 보내다”라고 적은 것도 있다.



이 가운데 주목을 끄는 목간은 ‘子基寺’ 목간이다. 무엇보다 절 이름이 특이하다. 직역하면 ‘아들의 터가 되는 절이다’. 아마도 왕실의 죽은 아들 곧 왕자를 위해서 지은 절 같다. 중국에도 皇基寺(황기사)란 양나라 무제가 아버지 문제를 위해서 건릉에 세운 절이다. 백제의 죽은 왕자가 한 둘이 아니겠지만 죽은 왕자를 위해서 지은 절은 현재까지 알려진 걸로 백마강 건너편의 왕흥사가 있다. 위덕왕이 죽은 아들을 위해서 지은 절이란 얘기는 앞서 한 바가 있다.

어느 해 4월 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인근 절에서 성왕의 능 옆에 있는 능사에 여러 가지 물건들을 보내왔다. 보희사에서는 소금을 보내오기도 했다. 자기사에서도 무언가를 보냈을 것 같은데 목간에는 ‘자기사’란 절 이름만 새겨져 있다.

죽은 왕자는 창왕의 아들이기도 하지만 능사 옆에 묻혀있는 성왕의 손자이기도 하다. 성왕이 관산성에서 전사했을 때 손자가 있었는지는 모른다. 손자가 할아버지 얼굴을 보았는지는 모르지만 죽어서나마 초파일에 할아버지를 뵈올 수 있었으니 둘의 감회가 어떠했을지는 짐작이 가고 남는다.



지금이야 핵가족이라 할아버지와 손주가 만날 기회가 적어 정붙이기도 어렵지만 난 어릴 때 방학 때 마다 친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 댁에서 줄창 지냈기 때문에 할아버지에 대한 정이 애틋하다. 걸어갈 때 뒷짐을 지는 습관은 외할아버지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생긴 습관이다. 예전에 외할아버지 묘를 이장할 때 나도 도와드린 적이 있다. 유골을 씻기도 했는데 유골 씻은 바가지가 무섭게 느껴지지 않고 마치 할아버지 유품처럼 생각되어 집에 가져와 책상에 놓아두기도 했다.

부여박물관에 가면 ‘자기사’란 목간을 보기 바란다. 세 글자에 불과하지만 거기에 숨겨진 할아버지와 손자의 애틋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출처 : 나라이름연구소장 조경철 교수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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