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에 난 뿔 환국
토끼에 난 뿔 환국
아직까지도 <<환단고기>>에 대한 열기가 식지 않고 있다. 단군이 세운 조선이란 나라보다 아주 오래전에 환국이 있었다는 주장은 식을 줄을 모르고 있다. 최근 홍산문화의 발굴로 환국이 고고학적으로 증명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환국은 토끼에 난 뿔처럼 처음부터 허상이었다.
19세기 일인학자들에 의해 주도된 단군연구는 그들 연구의 순수성을 의심받기에 충분했다. 그들의 한국지배를 합리화하기 위한 목적을 밑에 깔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이 일제강점기에 내놓은 <<삼국유사>>에는 원문의 환국(桓囯)을 환인(桓因)으로 고쳐놓았다. 당대 최고의 학자 최남선도 일본의 환인 조작에 강력하게 반대했다. 가뜩이나 환국에 목말라했던 사람들에게 이제 환인을 주장하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식민사학자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지금까지 발견된 <<삼국유사>> 판본에 ‘桓因’으로 나와 있는 판본이 없는 것도 문제였다. 1512년 임신본에 환국(桓囯)으로 되어있고, 1394년 판각으로 추정되는 조선 초기 본에는 ‘桓’(囗+士)으로 되어있었다. 그들은 ‘桓’(囗+士)도 桓囯과 같은 글자라고 주장하였고 언뜻 보기에 틀린 주장은 아니었다. 고려시대 <<삼국유사>> 판본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囯자가 因자가 아니고 國자임은 확실한 것인데, 문제는 (囗+士)자가 囯자가 아니라 因자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데 아직까지 (囗+士)자는 한국에서 발견되지 않은 글자라 (囗+士)자가 囯자라는 환국론자들의 주장을 반박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고려시대 판본 가운데 (囗+士)자를 찾아내었다. 바로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는 고려대장경에 수록되어있다. <<신집장경음의수함록>>은 경전에 나오는 어려운 용어의 음을 설명해 놓은 일종의 용어집인데 거기에 (囗+士)자가 들어간 ‘甫’(囗+士)을 설명하고 있었다. 이 용어는 <<문수사리보초삼매경>>에 나오는 용례인데 여기엔 놀랍게도 ‘甫因’으로 되어 있었다. 즉 ‘甫’(囗+士)=‘甫因’으로 (囗+士)과 因이 같은 음과 뜻을 가진 글자라는 게 고려시대 당대의 기록으로 확인이 된 것이다.
조선 초기(1394?) 판본에 桓(囗+士)으로 되어있던 것을 1512년 임신본을 판각할 때 이 因과 같은 자인걸 모르고 士에 가로 획을 하나 더 그어 王자로 만들어 桓囯을 잘못 만들어 버렸다. 결국 桓囯은 존재하지 않은 허공의 국가였던 것이다. 환국은 마치 토끼에 난 뿔이다. 이제는 주객이 전도되어 토끼에 대한 연구는 접어두고 토끼에 난 뿔의 모양과 크기 성분을 연구하는 상태가 되어버렸다.(조경철, 2016, <단군신화의 환인 환국 논쟁에 대한 판본검토>, <<한국고대사탐구>>23집(한국고대사탐구학회), 근간)
출처 : 나라이름연구소장 조경철 교수님 페이스북